리튬 정제 ‘도시광산’ 프로젝트

요즘은 땅을 파지 않아도 광물이 나온다. 흔히 도시광산이라고 부르는 이 사업은, 버려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전기차 배터리에서 리튬과 니켈, 코발트 같은 귀한 금속을 다시 꺼내 쓰는 새로운 방식이다. 땅속 광산 대신 도시 한복판에서 원료를 모으고 정제해 다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자원도 재배치되는 시대가 됐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정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른바 블랙매스라는 금속 가루를 고순도 리튬 화합물로 바꾸는 공정이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이걸 녹여서 금속만 추출하는데, 여기서 리튬만 쏙 빼내는 게 관건이다. 공장에서 쓰는 기술은 더는 실험실 수준이 아니고, 실제로 양산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온 상태다.

여기에 쓰이는 정제 기술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폐배터리를 해체하고, 셀 단위로 잘게 부순 다음, 화학 용액으로 금속 성분을 녹여내는 과정까지는 이제 제법 익숙한 흐름이 됐다. 그 다음엔 불순물을 걸러내고 리튬만 골라 추출한 뒤, 수산화리튬이나 리튬카보네이트 같은 형태로 재결정화한다. 이 재료는 전기차나 에너지저장장치에 들어가는 배터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뭔가 복잡해 보이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낡은 배터리를 삶아서 새 재료 뽑아내기'다.

공장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산업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위에서 설명한 블랙매스라는 물질이다. 전기차 배터리를 분해하고 잘게 부수면 양극재 성분이 섞인 검은 가루가 남는데, 이 안에 리튬과 니켈, 망간 같은 금속이 들어 있다. 이 블랙매스를 황산이나 알칼리 용액에 담가 금속을 용해시키고, 이온교환이나 용매추출 같은 공정을 거쳐 리튬을 따로 뽑아낸다. 공정은 복잡하지만 정제율은 높아지고 있다. 기술도 꽤 진보해서, 지금은 95퍼센트 이상 회수율을 자랑하는 공장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파일럿 공장에서는 블랙매스 1톤당 약 60킬로그램의 리튬을 회수할 수 있다고 보고된다. 이를 새 광산에서 채굴하려면 훨씬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경제적 메리트도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이 방식은 장거리 물류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기존에는 리튬을 칠레나 호주에서 캐내고, 그것을 다시 중국이나 한국으로 실어와 정제했다. 그 과정에서 탄소배출과 수송 비용은 늘어나고, 공급 안정성도 떨어졌다. 도시광산이 이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 수천 킬로미터를 오가던 자원이 도시 내부에서 순환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광양이나 군산 같은 국내 산업도시에는 이와 같은 리튬 정제 공장들이 차례로 들어서고 있다.

도시 속에 숨겨진 새로운 에너지 지도

전기차가 늘어나고, 태양광 같은 분산형 에너지원이 보급되면서 배터리 수요는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이 배터리를 구성하는 금속은 늘어나지 않는다. 특히 리튬은 몇몇 나라에 편중되어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한다. 그래서 산업계는 점점 더 도시에 쌓인 폐배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버려진 휴대폰이나 노후 차량에서 분리된 배터리는, 사실상 잘 정리된 금속 덩어리다. 슬며시 꺼내서 정제만 잘하면 새로 캐낸 것보다 더 순도 높은 재료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선 네바다 사막에 대규모 리튬 정제시설을 짓고 있고, 유럽에선 이탈리아의 낡은 제련소를 리사이클 허브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기업들이 폐배터리 수거부터 정제까지의 전 과정을 일원화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미 몇몇 중견기업들은 전기차 제조사와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안정적인 블랙매스 확보에 나서고 있다.

리튬 도시광산이 만드는 산업적 변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원료 수급의 자립성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리튬을 외국에 의존해야 했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조달하고 국내에서 정제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조달 비용 문제를 넘어, 전략적 물자 확보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흐름이다. 안정적인 원료 확보는 곧 제조업의 중심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는 국가 산업 전체의 체력을 지키는 일과도 직결된다.

또 다른 변화는 기술 축적이다. 리튬 정제 기술은 아직 완전히 표준화되지 않았고, 기업별로 노하우와 설계가 다르다. 여기에 자본과 경험이 축적되면, 리사이클을 넘어 정제소재까지 아우르는 수직적 통합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 중 일부는 리튬 정제뿐 아니라 양극재 생산까지 아우르는 통합 플랜트 모델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배터리 소재 산업의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산업단지와 지방경제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폐배터리 회수와 정제를 중심으로 한 산업 단지가 조성되면, 신규 일자리와 부가가치가 함께 생겨난다. 특히 조선·철강 중심이었던 도시들에서 새로운 축으로 리튬 산업이 자리를 잡는다면, 지역 산업 구조의 전환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구를 생각하는 척, 하지만 결국은 계산기 두들기더라

사실 기업들이 도시광산에 뛰어드는 이유가 전부 ‘착한 마음’은 아니다. 진짜 진실은 매우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분야다. 이 흐름을 잘 따르기만 해도 제품을 살 때 혜택을 주는 제도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에서 회수한 금속을 사용한 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주고, 유럽은 재활용 비율이 일정 기준을 넘지 못하면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 그러니 기업 입장에서는 ‘환경을 위한 설비’라기보다, ‘장사를 계속하기 위한 보험’으로 도시광산을 보는 셈이다.

또 한 가지는 평가 점수 때문이다. 요즘은 기업의 사업보고서에도 자원을 어떻게 써왔는지, 어디에서 재료를 사왔는지가 다 들어간다. 이 점수가 나쁘면 투자 유치나 납품이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도시광산은 여기서도 꽤 쓸만한 무기다. 사용 이력, 배출량, 처리 방식이 투명하게 남고, 남들보다 ‘덜 해로운’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아직 넘을 산도 많지만 그래도 방향은 정해졌다

물론 문제도 없진 않다. 폐배터리 물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아직은 계절별 편차가 크고, 수거 방식도 정형화되지 않았다. 공급이 들쑥날쑥한 상황에서는 공장 가동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아직 공정 안정성이 완전하지 않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꾸준히 내기 위해선 지속적인 기술 투자가 필요하다. 셀 불량률이 0.01퍼센트만 넘어도 전기차 배터리는 전량 폐기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정제 리튬의 품질은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광산은 새로운 자원 지도로서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더는 땅을 파서 자원을 캐는 시대가 아니라, 쓰고 난 것을 다시 되살리는 방식으로 자원을 돌리는 시대가 되고 있다. 산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고, 이에 맞춰 설비와 정책, 기업의 전략도 재편되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을 잘 타는 기업과 지역은, 에너지 시대의 새로운 주인공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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