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나타난다면 사람들의 환경을 바꿔놓지만 더 깊숙한 차원에서는 우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마케팅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이미지 구축을 넘어, 소비자의 방어적 태도와 감정적 거리감을 해소하는 과정을 요구받게 된다. 이번에는 소비자 불신, 브랜드 회피, 광고효과 저하라는 세 가지 심리 요인을 중심으로, 경기 침체기에 마케팅 전략이 왜 새로운 기준과 접근법을 필요로 하는지 살펴본다.
소비자 불신이 나타난다면 '좋은 조건'보다 '믿을 만한 이유'가 중요한 시기일지도
경제가 흔들릴 때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이 말을 믿어도 될까?" 불신은 이성보다 감정에서 먼저 자란다. 광고에 쓰인 표현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뒤에 있는 기업의 의도에 의심이 생기면 전체 메시지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경기 침체기에는 이 같은 의심이 빠르게 번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소비자들은 조건이 좋은 상품보다는 나를 속이지 않을 것 같은 말투를 먼저 찾는다.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는 기존의 화려한 문구나 강조식 표현보다는 '불필요한 포장 없이 전달하는 진심'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숫자나 할인율이 아니라, 왜 지금 이 제품을 이 가격에 제공하는지에 대한 정직한 맥락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나아가 후기를 인위적으로 꾸미기보다는, 실제 소비자가 어떤 망설임 속에서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경험이 더욱 설득력 있는 자료로 작용한다.
모험 대신 익숙함을 택하는 본능이 바로 브랜드 회피
이 시점에서 소비자가 낯선 브랜드를 멀리하는 이유는 그저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서가 아니다. 이는 손실회피 성향과 인지된 위험이라는 두 가지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다. Kahneman과 Tversky의 행동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이익을 얻는 기쁨보다 손실을 피하려는 두려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즉, 새 브랜드를 선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보이지 않지만, 실패했을 때의 손실은 매우 크게 느껴진다. 여기에 Bauer가 제시한 인지된 위험 이론을 적용해 보면, 소비자는 기능적, 재무적, 심리적, 사회적 위험을 동시에 감지하게 되며, 그 부담이 신생 브랜드에 대한 거리두기로 이어진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높은 사회에서는 이러한 반응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경기 침체기에는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이 소비의 보수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전체적인 마케팅을 반려해버린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즉 새로운 브랜드나 서비스가 진입하려면 낯선 것을 설득하는 수준을 넘어서, 소비자 내부의 손실 회피 본능을 진정시키는 심리적인 접근이 필요한 셈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런 반응은 단지 시장 점유율이 낮은 기업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재밌게도 중간지점의 브랜드에게는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그 말인즉슨 크고 유명한 브랜드는 ‘일단은 안전하겠지’라는 인식을 갖지만, 애매한 위치에 있는 브랜드는 소비자의 우선순위에서 빠르게 밀려난다는 말이다. 따라서 브랜드는 인식의 기반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따라서 제품 자체의 매력보다 선택받을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단순한 기능적 메시지를 넘어서, 제품이 소비자의 불확실한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 된다.
광고효과 저하: 정보보다 감정의 경로가 막히는 현상
광고가 먹히지 않는 이유는 광고의 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광고가 흐를 수 있는 감정의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 시 소비자는 정보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가 범람하는 가운데, 감정을 건드리지 못하는 광고는 밖에서 나는 새소리처럼 배경음으로 흘러가버린다.
특히 지나치게 밝거나 긍정 일변도의 메시지는 ‘현실 인식이 없는 광고’로 해석되기 쉽다. 마치 지금의 어려움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무겁거나 우울한 메시지가 효과적인 것도 아니고, 결국에 중요한 것은 공감대의 형성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광고는 소비자와 비슷한 톤에서 출발하여, 서서히 위로하고 동행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브랜드가 ‘광고주’가 아니라 ‘청자’의 입장으로 잠시 물러서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제품이 아니라 고객의 감정이 움직이도록, 브랜드는 서포터에 가까운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콘텐츠 중심의 접근, 예를 들어 고객 사연을 바탕으로 한 인터뷰, 실제 사용자의 변화 과정, 또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역할에 집중한 영상이 더 큰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
마케팅을 바꿔야 할 때가 바로 이때일지도
경기 침체기에는 숫자와 데이터 중심의 마케팅보다, ‘어떤 어조로 말을 건네는가’가 훨씬 중요해진다. 결국 이런 시기의 소비자는 가격을 비교하거나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안심할 수 있는 선택인지, 스스로가 처한 환경에 맞는 선택지 혹은 존재인지를 본능적으로 탐색한다. 브랜드가 사람처럼 느껴지는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태도를 갖고 있는지, 무리한 설득보다 함께 머물러 줄 수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마케팅 전략은 메가폰을 드는 일이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시작하는 일에 가깝다. 단기 매출의 등락보다는, 불확실한 시기에 소비자와 함께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장기 신뢰로 이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광고는 줄어도, 감정은 줄어들지 않는다. 소비자의 마음이 움츠러든 시기일수록, 기업은 더 조심스럽고 인간적인 태도로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