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식품이 단순히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수준은 지났다. 상온 보관이 기본이던 시대를 지나 냉장, 다시 냉동을 거쳐 이제는 초저온이라는 신세계에 도달했다. 한때 냉동실에 참치를 얼려보던 시절엔 -18도만 해도 제법 낮다고 느꼈지만, 요즘은 -60도 이하가 기본이다. 참치, 고급 수산물, 의약품, 심지어 고급육은 단지 얼리는 것이 아니라 '냉각을 잘 유지해야만' 한다는 시대다. 이쯤 되면 냉동창고가 아니라 극지방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초저온 유통망은 그저 냉장고를 무지막지하게 키우는 문제는 아니다. 질소 냉각 시스템, 다층 단열재, 탄력 운송 스케줄링, 실시간 온도 감시 센서 등이 어우러진 '움직이는 과학실'이다. 기온 변화가 조금만 생겨도 식품의 질은 훅 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미세한 맥박을 재듯, 온도를 0.1도 단위로 조절해가며 수산물을 옮기는 것이 이 업계의 일상이다. 냉장·냉동을 넘어선 정밀 온도 제어 유통망이 된 것이다.
온도 따라 달라지는 관세, 식품에도 세금의 그림자가..
식품에 세금이 붙는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식품을 얼리는 데 들어간 '에너지 사용량'까지 계산해서 세금을 매기겠다는 나라들이 생겼다. 대표적으로 유럽은 식품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기준을 초과하면 "너 국경조정세 내놔"라고 말한다. 즉 일종의 탄소 국경세를 붙인다는 말이다. 이 얘기를 들은 업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제는 얼리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이다.
심지어 제품이 어떤 온도로 얼마나 오래 유지됐는지를 수입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같은 연어라도 -18도로 운송된 연어와 -60도로 초저온 보관된 연어는 세율이 다르게 책정될 수 있다. 왜냐면 후자가 더 많은 에너지를 썼고, 온실가스 배출이 많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온도 관리가 잘 됐다는 증거는 신선함이 아니라 세금 고지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유통보다 빨리 달리는 세금과 기업들의 전방위 대응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기업들은 아니다. 노르웨이는 초저온 수산물 운송선단을 조기 교체하고 있고, 일본은 자국 항만의 초저온 창고를 수소 에너지 기반으로 바꾸는 실험을 시작했다. 칠레는 와인을 넘어서 고급 냉동 과일을 새 수출 품목으로 키우고 있으며, 여기에도 '저탄소 운송망'이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물론 국내 기업들도 움직이고 있다. 한진과 CJ는 초저온 신선 유통망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고, 특히 일부 물류 기업은 ‘급속냉각 + 자체 발전 트럭’이라는 신개념 이동 냉장고를 시험 중이다. 이들은 단순히 냉동 트럭에서 생선을 실어나르는 게 아니라, 세금과 인증의 충격을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 초저온 유통 설비는 이제 물류 설비가 아니라 통상 전략 무기나 다름없을 지도 모르겠다.
산업이 달라지는 구조, 이득도 조건이 따라야 한다
이 지점에서 산업 구조의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기존의 냉동 유통망은 항만에 거대한 냉동창고를 짓고, 대형 트럭을 이용해 이곳에서 전국으로 물류를 퍼뜨리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창고 중심, 항만 중심의 고정형 유통 구조다. 하지만 초저온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빠르고, 정밀하고, 에너지 효율적인 '움직이는 저장소'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냉동기기를 탑재한 트럭은 단순한 수송 수단이 아니라, 실시간 온도 조절 시스템과 데이터를 가진 이동형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또한, 수출 일정에 따라 한 치 오차 없이 맞춰지는 예측형 배송망이 요구된다. 단순히 '냉장 보관 중입니다'라는 알림으로는 부족하고, 배송 중 기온 변화 예보에 따라 경로를 바꾸거나, 운송 속도를 조절하는 능력까지 필요해졌다. 결과적으로 유통업체는 이제 물건을 옮기는 기업이 아니라, 데이터를 해석하고, 탄소 회계를 관리하며, 예측 가능한 물류 환경을 설계하는 '식품 물류 전략가'로 진화 중인 것을 보면, 가히 냉동 회계사, 냉장 경제 분석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초저온 상태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총 유통비의 30~40퍼센트를 차지한다. 수출용 식품에서 이 정도 비중의 비용이 고정 지출로 붙는다면,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가격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수출 식품 시장에서는 이제 신선함과 더불어 '세금 방어력'이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되어가고 있다. 같은 형제 고등어라도 얼마나 에너지를 덜 쓰고, 탄소 배출을 줄여 옮겼는지가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기술이 맛보다 중요해지는 순간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같은 소비자들은 연어 맛을 보기도 전에 “이 연어, 냉각 곡선 어디까지 내려갔어요?”라고 마트 직원에게 묻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 된면 식품 포장 뒤에 써 있는 '신선도'는 이제 미각이 아니라 탄소 배출량과 냉각 그래프로 표시될 날이 머지않았다. 기술의 냉정함이 진짜 식품의 신선함을 좌우하는 시대다.
식탁 뒤편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통상전쟁
과거에는 식품을 빨리 옮기는 속도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에너지 효율적으로, 얼마나 저탄소로 옮겼는지가 품질의 일부가 됐다. 국경을 넘는 생선 한 마리에도, 그게 어떤 냉동차에 실렸고, 운송 중 전기가 어디서 나왔는지까지 묻는 시대다. 이건 단순히 까다로운 세금 문제가 아니라, 유통을 둘러싼 국제적 심리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온 유통 체계는 이제 신선함을 넘어서 산업의 운명을 바꾸는 중이다. 세금은 예측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기술은 물류를 넘어 무역의 무기로 바뀌고 있다. 냉동 기술은 결국 식품의 수출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식탁에 오를 생선 한 마리의 온도는, 어느 날 우리 통장에 찍힐 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